TV드라마 인문학(41)-나시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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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인기드라마와 연기자이야기
KBS-TV ‘전우(戰友)’의 배우 나시찬 흔히 텔레비전드라마는 작가와 배우, 연출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들 한다. 다시 말해 극본과 연기, 그리고 연출이라는 삼각편대가 함께 날아야 하며, 그들 중 누가 빠져도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극본이 절대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떤 드라마도 좋은 극본이 없이는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없기에 일차적으로 극본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연기나 연출 없이, 그들을 소홀히 하고 드라마가 성립이 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연출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에 있어서의 연기의 비중과 역할은 연출이나 극본 못지않게 절대적이다. 1975년 6월 28일부터 1978년 7월 31일까지, KBS-TV는 주간드라마 ‘전우(戰友)’를 내보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무용담과 전우애를 소재로 한 시추에이션 전쟁드라마였다. 처음 시작은 KBS가 육이오 한국전쟁 25주년 특집으로 제작했는데, 작가는 이상현, 김정환, 이은성 등등의 몇몇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집필했다. 시추에이션드라마란 매번 같은 배우, 같은 무대, 같은 배경으로 고정되어 있으면서 매회 단막극 형태로 이야기만 바뀌는 포맷이다. 그래서 출연자는 한 두 명의 게스트 말고는 거의 변함이 없고, 전투라는 일정한 틀 안에서 매주 내용만 바꿔가는 드라마다. 연속극의 장점과 단막극의 작품성을 고루 살릴 수 있는 형식이라 하겠다. 따라서 늘 주인공을 맡고 있는 중심배우의 캐릭터는 그 드라마의 성패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전우’의 경우 소대장 역할이다. 한 소대의 소대장으로 수없이 이어지는 전투를 소대원과 함께 목숨을 걸고 수행한다. 과연 이 역할을 누가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최초의 시추에이션전투드라마 속에서 영원한 소대장으로 남아있는 ‘나시찬’ 연출을 맡은 김홍종과 장형일 등은 고민이 많았다. 궁리 끝에 KBS는 1969년에 데뷔하여 그때까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배우 ‘나시찬’을 택했다. 조금은 우락부락해 보일 정도로 얼굴은 세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거친 전투를 끝없이 치러내는 드라마에서는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간 시추에이션드라마 ‘전우’의 첫 회에서 소대장으로서의 나시찬은 뜻밖의 각광을 받았다. 투박하면서도 부하들을 아끼며 솔선수범하는 소대장, 그의 부리부리한 눈빛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삽시간에 사로잡았다. 물론 나시찬은 ‘전우’ 말고는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매번 전투장면 촬영에 지치기도 했지만 확실하게 굳어진 전투소대장의 이미지는 쉽게 다른 배역을 소화 해낼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드라마 ‘전우’에서의 나시찬이 연기해낸 소대장의 이미지는 강렬한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TV드라마 사상 나시찬 만큼 한 드라마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연기자는 드물 것이다. 소대장 역할만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마치 그만의 특별한 고유브랜드처럼 되었다. 모든 국군소대장은 일시에 나시찬이 되었다. 드라마 ‘전우’는 탤런트 나시찬으로 하여 그야말로 불후의 인기드라마가 되었고, 그 인기드라마의 중심에는 분명 나시찬이라는 연기자가 있었다. 왕년의 그 인기를 믿고 1983년에 다시 탤런트 강민호를 주인공으로 이른바 ‘시즌 2’를 일 년 동안 방송했지만 역시 나시찬의 ‘전우’만큼 사랑받지는 못했다. 위장망을 두른 철모를 눌러 쓰고는 전쟁터에서 뒹구는 뛰어난 연기파 그러다가 2010년에 다시 인기배우 최수종을 주연으로 ‘시즌 3’를 20부작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나시찬의 ‘전우’가 받은 인기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전우’의 나시찬은 영원한 소대장이었다. 방송 첫해인 1975년 10월 제3회 대한민국방송대상에서 그는 텔레비전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 매끈하게 생긴 호감도 면에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혼신을 다하는 연기파로 당당하게 연기상을 거머쥔 것이다. 불후의 인기드라마와 함께 그는 이 ‘전우’ 드라마 한편으로 불후의 연기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는 것. 나시찬은 1978년 12월에 모처럼 ‘전우’를 떠나 TV드라마 ‘귀향’의 녹화 도중 결핵성 뇌막염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에 들어간다. 백전백승의 전투소대장 역할도 병마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듯, 그는 1981년 1월에 대전 부근의 신탄진 고향집에서 숨을 거둔다. 향년 41세의 젊은 나이였다. 과연 그가 ‘전우’의 소대장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았어도 그토록 강한 인상을 남겼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사람들은 시추에이션드라마 ‘전우’의 소대장 역을 맡은 연기자 나시찬을 아마 누구도 잊지 못하리라. 전투에는 용감하게 앞장서면서도 부하에겐 한없이 따뜻한 소대장! 안타깝게도 아까운 연기파 배우 한 사람을 너무도 일찍 보냈다고 생각하리라. 동시에 그때 그 흑백화면으로 된 전투장면에서의 나시찬을 문득문득 떠올릴 것이다. 인간 나시찬은 비교적 젊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연기자로서의 배우 나시찬은 당시 드라마를 지켜본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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