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인문학(67)-원수 코드, 원수 모드, 원수 컨셉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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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惡人)과 악행(惡行)의 ‘원수드라마’
원수 코드, 원수 모드, 원수 컨셉의 역사 2015년 현재 한국TV드라마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원수 컨셉’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오로지 ‘원수’로만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아침저녁의 일일연속극과 주말연속극, 흔히 미니시리즈라 부르는 월화수목의 주중드라마들 대개가 원수관계의 설정이고 원수들의 다툼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5년 들어 새삼 그런 것이 아니라 근래 쭉 쌓여온 꽤 유서 깊은(?) 한국드라마의 극적 상황 가운데 하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설정도 원수가 대부분이지만, 마치 사람들이 사는 데는 관심도 없고 원수를 상대로 싸우고 원수 갚기에만 인생을 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원수가 되기 위해선 온갖 악행이 다 등장하고 악인이라는 악인은 총동원 된다. 그럴듯한 악인과 악행이라기보다 억지로 원수를 만들고 그 원수와의 함수관계를 통해 드라마를 이끌어가려고 온갖 무리수를 다 동원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전혀 타당성이 없고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을 다 엮어 나간다. 적어도 10년 안팎의 비교적 근래에 방송된 한국TV드라마에는 악인을 빼고는 인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할 정도다. 주인공뿐만 아니다. 매 드라마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의 원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부터 원수처럼 살거나 실제로 원수 끼리 만나 원수로 살아간다. MBC ‘내 딸 금사월’ 등 많은 드라마들이 부부관계를 원수로 설정하거나 원수처럼 사는 이야기들이다. 부모와 자식도 따지고 보면 원수고 형제나 자매, 시누이와 올케, 친구와 친구 사이, 사업상 관련자들, 이웃이나 전 남편과 전 아내, 나라와 나라 사이, 정적(政敵)과 동업자, 심지어는 스승과 제자 사이도 원수구도로 만들어 놓는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 같은 업계의 경쟁자들, 때로는 감정 없이 법을 집행해야 하는 직업이나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환자까지 서로 원수 모드로 꾸며놓고 드라마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원수’ 퍼레이드 방법도 가지가지, 종류도 가지가지 출생의 비밀로 원수가 되고, 불륜과 불륜이 얽혀 원수가 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상대방을 해치는 바람에 원수가 되고, 그 결과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고 보태는 악인의 행태를 되풀이 한다. 한국의 TV드라마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원수를 갚거나 원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다가 평생을 다 보내며 살아가거나, 인생은 전부 그뿐인 것처럼 보인다. 원수가 아닌 우호적인 관계로 살아가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생,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과연 인간의 본질이란,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정말 원수라야만이 극적 긴장감이 유지되고 흥미진진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인간관계는 근래의 막장 TV드라마에서처럼 원수들뿐인가. 아니다. 순전히 거짓말이다. 조금도 리얼리티가 없는 짓들을 마치 그것이 드라마인양 날이면 날마다 벌이고 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픽션과 판타지까지 동원하는 드라마가 진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TV드라마가 지닌 원수 코드, 원수 모드, 원수 컨셉의 역사는 깊다.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TV드라마는 처음부터 ‘원수’를 이용한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었다. 가령 ‘아씨’에 있어서는 난봉꾼 남편이 ‘아씨’의 원수였고, ‘여로’에서는 독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사실상의 악인, 원수의 역할을 맡았었다. 그러나 이 경우의 원수란 그저 그냥 이해부족이나 사이가 나쁜 정도로 끝까지 괴롭히거나 밑도 끝도 없이 목숨까지 빼앗는, 터무니없고 끔찍한 원수관계로 만들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 등의 시대적 얘기를 빼고는 어디까지나 살아가는 일부로서의 불편한 사이였다. 물론 그 후로도 고부간의 갈등이나 집안 간의 원수관계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하거나 원수를 갚는데 일생을 모두 거는 억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납득가지 않는 원수 코드나 원수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대략 20세기 말,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상당수의 드라마가 막장으로 흐르고 극악해지면서 온통 원수로 도배를 하는 경향이 되어버렸다. 엄격히 말해서 있을 수도 없는 TV드라마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잘못된 인식과 오해의 산물인 것이다. 시청률이라는 상업주의와 자극을 점점 높여가는 과정에서 드라마는 원수들의 것이 되었으며, 원수를 만들지 않고는 성립이 안 되는 것인 양 잘못 받아들이면서 드라마 속 원수의 개념과 리얼리티도 점점 달라져 갔다. ‘원수드라마’ 인간과 인생을 왜곡시키고 세상을 온통 악마의 소굴로 만들고 있어 처음에는 지극히 일부 저 품격 막장드라마가 시도를 하더니 어느 새 전체 드라마로 확산 된 느낌이다. 작금의 TV드라마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모두 악인들뿐이고, 원수와 원수 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며 살아가는 듯이 보인다. 그것도 전혀 타당성이 없거나 납득이 가지 않는 악인들의 악행과 일부러 꾸며내서 만든 원수들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원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극악한 짓만 골라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드라마는 온통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어 놓는다. 인생이란 모두 원수 만들고 원수 갚는 데만 쏟는 것이 전부인양 바보 같은 드라마들만을 양산해낸다. ‘시어머니는 내 며느리’ 등 3개 지상파채널에서 방송되는 아침드라마들도 모두 기본 컨셉은 원수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 끝난 SBS의 ‘돌아온 황금복’ 등의 각 방송사 저녁일일연속극들도 그야말로 원수 코드에 원수 모드로 일관한 드라마들이다. 부분 또는 전체가 그 모양이다. 드라마가 세상이나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세상과 인생과 인간을 오히려 악마의 소굴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별의별 원수관계를 다 만들어내고 있다. MBC-TV의 주말극 ‘내 딸 금사월’ 등에서 보듯이 원수가 될 수 있는 구조란 구조는 다 등장한다. 아버지를 배신한 자를 남편으로 맞아 사는 여자,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자들의 원수관계, 자신과 혼인을 약속한 여인과의 사이에 난 딸과 다른 여자아이들과의 원수관계,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제자, 친구와 친구, 딸과 그의 고아원 동기들 간의 관계도 모두가 원수와 원수 사이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아내가 겨우 안경 하나 끼고 휠체어 타고 딴 여자인 것처럼 남편을 속이며 나타난다. 집에서는 태연히 아내 노릇을 한다. 세상에 원수인 남편과 부부로 사는 여자도 드물겠지만, 그 정도 변장했다고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보는 억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 모두가 그놈의 원수 코드, 원수 모드, 원수 컨셉의 ‘원수드라마’ 때문에 지어낸 황당무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원수가 아닌 사람의 관계, 오로지 복수에 올인 하거나 복수에만 눈이 멀지 않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훨씬 더 일반적이고 많을 것이다. 지혜롭지 못하고 터무니없는 ‘원수드라마’엔 이제 신물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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