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우리는 고민이 많았다. 오로지 정상적인 TV드라마를 찾아보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이후 올해도 여전히 비정상적인 드라마들이 너무나 판을 친 한해였기 때문이다.
아무 내용도 없는 황당무계한 판타지들과 아예 리얼리티를 배제한 비현실적 장르물들이 마치 무슨 흐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양산되는 가운데 우리 드라마에 대한 시청률은 바닥을 치고, 드라마를 제작 방송하는 쪽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무슨 드라마든 시청률 3, 4%가 예사다. 이런 면에서 한국TV드라마는 분명 위기다. 이것을 드라마소비자들의 매체다양화로만 볼 것인가. 한국TV드라마는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아닐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이 이제 우리 TV드라마는 바야흐로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상적인 TV드라마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TV방송은 영화 등 여타 영상물과 달리 근본적으로 생활매체이며 TV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생활드라마라’여야 맞다.
그것이 다른 영상물과의 차별화이며 TV드라마 고유의 덕목이다. 과연 그러고 있는가.
TV드라마란 ‘일상성(日常性)의 미학(美學)’이라든지 오직 인간을 다루는, 인간본질을 추구하는 작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스토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그리는 것’이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TV드라마의 개념에 대한 정리다. 모든 문학작품들이 다 그렇듯이 본래 드라마란 허구를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근데 왜 진실추구는 없고 터무니없는 맹탕 허구만 자꾸 만들어내는가. 이것이 정상적인 드라마의 길이며 기능이며 역할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살아가는 이야기여야 하고 오로지 인간을 파고드는 가운데 드라마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의 TV드라마들이 바로 이 개념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70% 이상의 시청률을 예사로 점유하지 않았던가. 단 한편이라도 이런 드라마는 없을까. 그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드라마는 없을까. 어딜 보나 주제나 내용, 진정성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오로지 씨알도 안 먹히는 터무니없는 거짓말 경연대회나 하는 것 같은 수준으로 시청자를 속이겠다고? 명백한 시청자 모독행위다.
일반 시청자 모니터링단과 전문가그룹으로 꾸려진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방송된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 모든 TV채널의 드라마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분기별 토론평가회의를 거쳐 대상드라마를 좁혀나가는 절차를 밟았다. 그 결과 연속극의 경우(미니시리즈 포함) 마지막에 두 편까지 좁혀졌으나 취향에 따른 편향성을 배제하고 정상적인 드라마가 어느 쪽인가 여부를 가려 ‘올해의 좋은 드라마’에 최종적으로 SBS가 방송한 ‘우리영화’를 선정했다. 여기에는 천만분의 일에 해당할까말까 한 해프닝도 없었고 요즘 드라마들이 즐겨 쓰는 사기에 가까운 자극적인 수법이나 해로운 양념도 치지 않았으며, 차분하고 담백하게 인간의 마음을 그리는데 충실함이 돋보였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라고 하고 싶은 주제를 따라 영화제작과정을 보통 인간의 삶과 일치 또는 보편화 시키는데 성공한 드라마라고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황당무계한 드라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한번 제대로 된, 무리 없는 드라마를 선보인 그 용기에 특히 전문가그룹에서 많은 점수를 주었다.
단막극 부문에서는 KBS-2TV가 방송한 ‘영복, 사치코’를 뽑았다. 한. 일간의 문제를 뛰어넘어 휴머니즘이란 주제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작품성의 근간이 되는 단막극을 꼭 한편 뽑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음을 고백한다. 내년에도 더 좋은 드라마가 많이 방송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 신상일 전문위원 | 방송작가, 방송평론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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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은 전문위원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 박미란 전문위원 | 공군사관학교 어문학과 조교수 |
| 송치혁 전문위원 | 세종대학교 초빙교수 |
| 시청자 모니터링단 | 류성필, 박예지, 박지민, 박효준, 이미정, 이은선, 이하나, 최병록 |